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블로 아이마르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축구선수 출신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지역팀인 에스투디안테에서 성장을 하다가 16세의 나이에 아르헨티나의 명문 [[CA 리버 플레이트]]에 입단하였다. 특히 자신의 우상이자 [[CA 리버 플레이트]]의 신적 존재인 [[아리엘 오르테가]]의 영향을 받으며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1997년에 그는 프로선수로서 데뷔하게 되면서 [[발렌시아 CF]]로 이적한 오르테가의 10번을 물려받았고 오르테가 못지않은 플레이와 뛰어난 개인기를 선보이며 '그의 플레이는 광대가 재주를 부리는 것과 같다' 라는 찬사를 팬들에게 받았다. 이 때의 뛰어난 활약으로 그는 '''어릿광대'''라는 애칭을 얻었다. 또 얼마 후엔 아르헨티나의 키는 작지만 뛰어난 기술과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받게되는 '''제 2의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라는 수식어까지 달게 됐다. [[2000년]]에 [[발렌시아 CF]]에서 적응을 실패한 오르테가가 다시 돌아오면서, 그와 공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오르테가가 윙포워드로 뛰면서 포지션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하비에르 사비올라]]와 함께 아르헨티나 리그의 전반기 우승을 이끌어냈다. 이후 2001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발렌시아로 이적하였다. 이적 직후 초반기에는 다른 리그 템포에 못 따라가는 모습을 모였으나 이내 적응하며 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이적하자마자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발렌시아는 준우승을 하였다. 특히나, 맨유와 아스날의 중원을 휘저으며 특유의 드리블로 농락하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었다. [[가이즈카 멘디에타]]가 [[라치오]]로 이적하며 발렌시아에 위기가 도래할 것 처럼 보였으나, [[라파엘 베니테스]]가 부임하면서 아이마르는 발렌시아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 때는 국내 커뮤니티들 뿐 아니라 스페인 현지에서도 [[지네딘 지단]]을 이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놓고 [[호나우지뉴]]와 라이벌 관계를 짧게나마 다투었다. 01/02 시즌 31년만에 리그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03/04시즌에는 잔부상으로 후반기를 많이 결장하였으나 리그 우승과 더불어 UEFA컵 우승까지 이뤄냈다. 하지만 [[라파엘 베니테스]]가 발렌시아에서 리버풀로 떠나면서 자신의 주 포지션이 아닌 섀도우 스트라이커와 측면 미드필더로 뛰면서 점점 부진에 빠졌고, 부상이 겹치면서 서서히 주전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엄밀히 따지면 후임으로 왔던 [[라니에리]]와 [[키케 플로레스]]와 전술적인 마찰은 있었지만 플레잉 타임을 놓고 보면 주전급에 가까웠으며 키케는 아이마르를 어떻게든 쓰려는 노력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4-2-3-1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내지 4-4-1-1 쳐진 세컨드 스트라이커보다 플랫한 포메이션을 추구했던 키케와도 결국 전술적인 마찰을 피하지 못하며, [[2006년]]에는 당시 [[리버풀 FC]] 감독이며 아이마르를 지도했던 [[라파엘 베니테스]]가 리버풀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을 하기도 했으나 당찬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던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하였다. 이 당시 사라고사는 아이마르와 [[디에고 밀리토]]의 이적으로 상당히 주목받는 클럽이었고, 한준희 해설위원은 라리가 돌풍의 팀으로 꼽기도 했다. 아이마르와 밀리토 듀오의 활약으로 사라고사는 06/07 시즌 리그 6위로 UEFA컵 진출을 따내기도 했는데 07/08시즌 들어, 밀리토와 아이마르의 동반 부상 아웃으로 인해 팀은 겉잡을 수 없이 추락하였고, 달레산드로의 기행와 팀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들에 사라고사는 끝끝내 강등당하고 말았다. 이후 강등된 사라고사에서 [[SL 벤피카]]로 이적하였다. 강등된 사라고사는 여러 클럽들의 이적시장 맛집이 되었고, 아이마르 역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다. 빅리그 클럽들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오퍼를 넣었지만, [[후이 코스타]]와 발렌시아에서 이미 인연이 있었던 [[키케 플로레스]]는 아이마르 영입에 공을 기울여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벤피카 이적 초반기에는 전 시즌 시즌 아웃급이었던 부상이 발목을 잡아 부진하였으나, 이후 벤피카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잡아 리그와 유럽대항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 시절에는 [[곤살로 이과인]]과 함께 아르헨티나 국대로 다시 발탁되기도 했으며, [[리오넬 메시]]도 자신의 우상은 아이마르라며 그를 추켜세워주기도 했다. 2013년 6월, 5년간의 [[SL 벤피카]] 생활을 마치고 떠나겠다고 선언하였다. "대단한 5년이었다."라고 벤피카 측에 감사의 표시를 남겼으며, 이후 2013년 8월 말레이시아의 프로 축구 구단인 조호르 다룰 탁짐 FC과 2년 계약을 맺고 말레이시아 슈퍼 리그에 진출하였으나 외국인 선수 제한에 걸려 2014년 1월에야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2013년 시즌까지 말레이시아 슈퍼 리그는 2명의 외국인 선수만을 선수 명단에 올릴 수 있었으나, 2014년 시즌부터 아시아 쿼터 1명을 포함한 4명으로 확장되었다. 말레이시아 리그는 1월부터 새 시즌이 시작되므로 6개월간 출전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여기서도 고질적인 부상 문제가 발목을 잡아 2014 시즌동안 8경기를 뛰고 4개월만인 2014년 4월, 부상 문제로 결국 팀에서 방출되었다. 2014년에는 무적(계약이 없는) 선수 신세.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많은 선수들이 소속 팀을 옮기는 시즌이지만, 그가 새 소속팀을 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은퇴를 할지는 지켜봐야 될 것이다. 2015년 여름 고향인 [[CA 리버 플레이트]]로 자유 이적하였다가 고질적인 오른 발목 부상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7월 1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리오넬 메시|메시]]는 [[SNS]]를 통해 우상의 은퇴를 알리고 그의 앞길을 축복했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41&aid=000243815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